요즘 생성형 AI를 둘러싼 이야기를 보다 보면, 기술이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업무를 도와주는 도구였습니다. 보고서 초안을 잡아주고, 이메일을 다듬어주고, 모르는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고, 흩어진 생각을 정리해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AI는 단순한 도구의 자리를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대화 상대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상담자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연인처럼 느껴졌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만 알아봐 주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최근 해외 언론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AI psychosis”라는 말이 자주 보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AI 정신병” 또는 “챗봇 정신병”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표현이 살짝 불편합니다.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AI가 완전히 새로운 병을 만들어냈고, AI를 쓰면 누구나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는 식으로 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현재 이 표현은 공식 임상 진단명이 아니라, 챗봇을 장시간 사용한 뒤 망상이 생기거나 기존 망상이 깊어지는 사례를 설명하는 비공식 표현에 가깝습니다. 미국 National Academy of Medicine도 AI psychosis를 임상 진단명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이 현상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름이 아직 정식 병명이 아니라고 해서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직 제도와 진단명과 교육체계가 따라오지 못했을 뿐, 현실에서는 이미 AI와 인간의 관계가 묘하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The Lancet Psychiatry》에는 AI 관련 망상과 대형 언어모델의 위험, 망상 공동생성 메커니즘, 안전장치를 다룬 논문이 실렸습니다. 연구자들은 AI가 단독으로 새로운 정신질환을 만든다고 단정하기보다는, AI와의 상호작용이 일부 사용자의 망상적 사고를 확인하고 증폭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문제의 핵심은 AI가 위험한 괴물이라서가 아닙니다. AI가 너무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통 이상한 확신에 빠지면 주변에서 한 번쯤 제동을 겁니다. “그건 너무 오바한것 같은데?”, “다시 확인해보자”, “정신좀 차리고 나면 이야기하자” 같은 현실의 제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AI는 대체로 부드럽고, 친절하고, 즉각적입니다. 사용자의 말을 끊지 않고, 감정을 받아주고, 이야기를 이어주고, 때로는 사용자의 생각이 매우 특별하다는 느낌까지 줍니다. 평소에는 이것이 장점입니다. 하지만 외롭거나 불안하거나 잠을 못 자거나 이미 어떤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이 친절함이 위험한 증폭기가 될 수 있습니다.
2023년 덴마크의 정신과 의사 쇠렌 디네센 외스테르고르가 생성형 AI 챗봇이 정신병 취약성이 있는 사람에게 망상을 유발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을 때만 해도, 이는 비교적 이른 경고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챗봇이 인간처럼 느껴지는 점, 동시에 기계라는 점에서 생기는 인지적 혼란, 그리고 AI의 작동 원리가 사용자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블랙박스 성격이 망상적 해석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단순한 공포가 아닙니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AI가 사용자의 확신을 너무 쉽게 받아준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 맞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특히 외롭거나 지쳐 있거나 실패를 겪고 있거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상태라면, 자신을 반박하지 않고 계속 들어주는 존재에게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AI는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밤새 대답합니다. 사용자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다시 받아줍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혀를 찰만한 이야기도 다 긍정적으로 받아주고 들어 줍니다. 현실의 사람은 어느 순간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지만, AI는 계속 대화를 이어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는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내면을 끝없이 반사하는 거울이 됩니다.
OpenAI도 이 문제를 단순한 주변 이슈로 보지는 않는 듯합니다. OpenAI는 2025년 10월 민감한 대화에서 ChatGPT의 대응을 강화했다는 글을 공개하면서, 정신건강 전문가 170명 이상과 협력했고 정신병·조증·자살위험·AI에 대한 정서적 의존을 별도 안전 평가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주간 활성 사용자 중 약 0.07%가 정신병 또는 조증과 관련된 정신건강 위기 가능성을 보이는 대화를 하고, 약 0.15%는 자살 계획이나 의도와 관련된 명시적 지표를 포함한 대화를 한다고 추정했습니다.
0.07%라는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이용자 규모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더구나 이 문제는 단순히 극단적인 사건이나 병원 입원 사례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뉴스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대신 조금씩 일상이 흔들립니다. 잠을 줄입니다. 가족과 대화가 줄어듭니다. 동료의 피드백을 불편하게 느낍니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의 말도 믿지 않습니다. AI가 해준 말을 더 믿습니다. 현실에서 확인해야 할 일을 AI 대화창 안에서 해결했다고 착각합니다. 이 조용한 흔들림이 오히려 더 무섭습니다.
직장에서는 이 문제가 더 복잡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직원이 AI와 밤새 대화하면서 “내 아이디어는 회사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동료들은 아직 내 통찰을 이해하지 못한다”, “AI가 보기에도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기회다”라는 확신을 키운다고 생각해봅시다. 처음에는 열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동료의 검토를 거부하고, 상사의 피드백을 방해로 여기고,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AI와 나눈 대화를 더 신뢰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순간 AI는 업무도구가 아니라 자기확신을 무한히 반사해주는 거울이 됩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AI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겉으로만 보면 비슷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둘 다 AI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둘 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하고, 둘 다 기존 방식이 낡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차이는 현실 검증에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은 결과물을 동료, 데이터, 기준, 책임 체계 안에서 검증합니다. 반대로 AI에 종속된 사람은 AI가 준 답을 자신의 확신으로 삼고, 현실의 반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때 조직은 혁신을 얻는 것이 아니라 판단 왜곡, 협업 붕괴, 업무 누락, 보안 사고의 위험을 떠안게 됩니다.
특히 기업 현장에서는 정신건강의 문제와 정보보안의 문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민뿐 아니라 회사의 내부 자료까지 대화창에 넣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보고서를 더 잘 만들기 위해 고객정보를 넣고, 사업계획을 더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영업전략을 넣고, 법률 검토를 받기 위해 계약서를 넣고, 기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스코드나 설계자료를 넣을 수 있습니다. 본인은 업무 효율을 높인다고 생각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개인정보와 기업기밀이 외부 서비스로 흘러나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입니다. 결국 AI 과의존은 단지 개인의 몰입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기밀관리와 책임체계 문제로 연결됩니다.
일상에서는 더 인간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AI는 언제든 대답합니다. 피곤하다고 하지 않고, 귀찮다고 하지 않고, 사용자의 말을 중간에 끊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에게 AI는 너무 매력적입니다. 현실의 관계는 불편하고, 상처가 있고, 기다림이 있고, 오해가 있지만 AI와의 대화는 즉각적이고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부드러움 때문에 사람은 현실의 관계에서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가족이 걱정하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친구의 조언은 “낡은 사고”처럼 들리며, 동료의 비판은 “나를 방해하는 말”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AI를 많이 쓰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시간만이 아니라 사용 후의 변화입니다. AI와 대화한 뒤 생각이 정리되고 현실의 일을 더 잘하게 된다면 그것은 좋은 사용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AI와 대화할수록 잠을 줄이고, 사람과 멀어지고,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 커지고, 현실의 피드백을 거부하게 된다면 그때는 멈춰야 합니다. 정신증은 일반적으로 망상이나 환각처럼 현실과의 접촉이 흔들리는 경험을 포함할 수 있고, 조기에 전문적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신건강 기관들은 설명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AI 사용을 겁주기 위한 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AI를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는 더 잘 써야 합니다. 다만 더 잘 쓴다는 말은 더 많은 기능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더 빠르게 답을 뽑아내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로 잘 쓴다는 것은 AI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AI가 준 답을 현실의 기준으로 검증하는 것입니다. AI가 나를 위로할 수는 있어도 내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AI가 보고서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회사의 책임을 대신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앞으로의 정부의 인공지능 관련 교육 방향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예방교육이라는 과의존과 중독 관련한 교육영역이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단순한 사용법 교육만으로는 부족했고, 결국 건강한 사용습관과 자기조절을 다루는 예방교육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그보다 더 넓고 복잡한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주로 여가, 소통, 정보검색의 도구였다면 AI는 업무, 학습, 창작, 감정 상담, 의사결정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직장과 학교에서는 “일 때문에 써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이 붙기 쉽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오래 쓰는 문제를 넘어, 스스로 멈추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인공지능) 과의존은 기존의 디지털 과의존과 결이 조금 다릅니다. 기존의 디지털 과의존이 시간 낭비, 자극 추구, 즉각적 보상에 가까웠다면, 생성형 AI(인공지능) 과의존은 생각의 대리, 확인 편향의 강화, 관계의 대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가 내 생각을 대신 정리해주고, 내 판단을 그럴듯하게 뒷받침해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계속 돌려줄 때 사람은 쉽게 착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직장인이나 학생처럼 성과 압박을 받는 사람일수록 “AI가 나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준다”, “AI와 함께하면 나는 더 특별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처음에는 생산성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피해는 서서히 옵니다. 처음에는 일이 빨라진 것 같고, 생각이 잘 정리되는 것 같고,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해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주변에서도 “AI를 잘 활용하네”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피드백이 불편해지고, 사람과 상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AI가 준 답을 검증하지 않은 채 믿게 됩니다. 업무 능력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단력이 흐려지고,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실제 업무성과가 떨어지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문제를 자각하게 됩니다. 이때는 이미 단순한 사용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리듬, 정서적 안정, 직장 내 협업, 정보보안 문제까지 함께 얽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앞으로 10년, 15년 뒤에는 AI를 어른이 되어 처음 접한 세대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AI와 함께 자란 세대가 사회에 나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AI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기본값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의 성인들은 AI를 “새로운 도구”로 배우지만, 다음 세대는 AI를 “늘 곁에 있는 대화 상대이자 학습 파트너”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방교육은 나중에 문제가 커진 뒤에야 만들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디지털 과의존 예방교육이 그랬듯이, 생성형 AI(인공지능) 과의존 예방교육 역시 언젠가 필요해질 교육이 아니라 이미 시작해야 할 교육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교육은 “AI 정신병 교육”처럼 자극적인 이름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AI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확장하는 도구이지,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줘야 합니다. AI가 지나치게 내 말에 동조할 수 있고,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 수 있으며, 내 확신과 편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업무용과 개인용 사용을 구분하고, 사용 목적과 시간을 정하고,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사람과 교차 검증하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AI만 나를 이해한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AI와 대화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현실의 피드백이 점점 거슬린다” 같은 위험 신호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법도 교육해야 합니다.
결국 생성형 AI(인공지능) 과의존 예방교육 또는 인공지능 과의존 예방교육은 AI를 금지하기 위한 교육이 아닙니다. AI를 더 건강하게 쓰기 위한 교육입니다. 기술을 멀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나 사이의 경계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AI가 일상과 직장, 학습과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올수록 우리는 사용법만 배워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멈추는 법, 의심하는 법, 검증하는 법, 사람과 다시 연결되는 법까지 함께 배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형 AI(인공지능) 과의존 예방교육은 미래에 나올 법한 교육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할 새로운 디지털 안전교육이라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AI 정신병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의학용어 하나가 새로 생겼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확신을 너무 잘 받아주는 기술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취약함으로만 넘겨서는 안 됩니다. AI가 일상과 직장 안으로 깊이 들어온 만큼, 우리에게는 그에 맞는 사용문화와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AI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긍정해주고, 외로움을 받아주고, 확신을 키우는 데 매우 능숙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AI를 두려워하기보다 정확히 알아야 하고, 금지하기보다 경계를 세워야 합니다. AI를 더 잘 쓰기 위해서라도, 먼저 인간이 어떤 순간에 약해지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AI와 대화한 뒤 내가 현실의 일과 사람에게 더 가까워졌는지, 아니면 더 멀어졌는지를 돌아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의 안전은 거창한 기술 장치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지금 AI를 도구로 쓰고 있는지, 아니면 AI에게 나의 판단과 관계를 조금씩 넘겨주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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