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사무실에서 저시력자 직원이 정부기관 온라인 직무교육을 듣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모니터 화면 바로 앞까지 고개를 바짝 들이민 채 힘겹게 수업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화면 하단 자막은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조차 읽기 힘들 만큼 작고 흐릿했고, 일부 과정에는 자막조차 없었습니다. 특히 AI 실습 강의의 코드 화면은 검은 배경에 흐릿한 흰 글씨로 돼 있어서 프레임이 넘어갈 때마다 글자가 번져 보였습니다. 일시 정지를 해도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가장 의아했던 건 그 사이트 하단에 떡하니 붙어 있던 공식 '웹 접근성 인증' 마크였습니다. 행정적 기준과 실제 사용자 경험 사이에 이렇게 큰 간극이 있구나 싶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이러닝 플랫폼과 디지털 교육 서비스를 살펴봤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고, 몸이 불편하거나 인프라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디지털 격차를 인터넷 보급률이나 기기 보유 여부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접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서비스에 접속해도 누구는 쉽게 배우고 성장하는 반면, 누구는 시작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새로 생긴 '보이지 않는 성벽'인 셈입니다.
AI는 원래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고 나온 기술입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워도 적절한 교육과 도구만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신만의 업무 시스템을 짜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기술이 특정 계층의 역량만 더 키워주는 수단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오히려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더 많은 사람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쪽으로 쓰여야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무료 AI 교육 플랫폼 'AIKOREA'를 만들게 됐습니다.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화려한 기능이나 최신 기술이 아니라 접근성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지금은 없어진 국제교육봉사단체 기블리에서 접했던 저데이터 환경 배려형 비대면 교육 인프라가 큰 영감을 줬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고화질 영상보다 가볍고 읽기 쉬운 사이트와 콘텐츠가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AIKOREA는 화려하고 복잡한 사이트도, 단순 mp4 영상 중심도 아닌 심플한 웹 기반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1시간 분량 강의 용량을 약 1MB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400kbps 수준의 느린 네트워크나 저사양 기기에서도 무리 없이 학습할 수 있고, 브라우저 번역 기능을 쓰면 여러 언어로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본문 글자 크기는 18px 이상으로 유지하고, 고대비 코딩 예제와 실시간 글자 크기 조절 기능도 넣어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최근 구글 크롬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검사에서 성능, 접근성, SEO 등 주요 항목이 높게 나온 것도 이 방향이 기술적으로도 의미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기능들은 대단한 기술적 혁신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작은 차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접근성은 부가 기능이 아니라 교육 기회의 출발선이기 때문입니다.
AIKOREA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뗐습니다. 초기 운영 단계라 시스템 안정성이나 서비스 완성도 면에서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 부분은 이용자들의 의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보완해 나갈 계획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소외의 원인이 돼서는 안 됩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게 우리가 기술을 통해 추구해야 할 진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AI는 특권이 아니라 기회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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